(부경일보) 김다정 기자 =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오리온이 초코파이의 달콤한 황금빛 변신을 시도했다. 10년의 연구개발 끝에 만들어진 '초코파이 바나나'는 판매실적에서 오리지날 초코파이를 추월했다.

▲달콤한 황금빛으로 변신한 '초코파이 바나나'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오리온

이전의 ‘허니버터’ 열풍에 이어 ‘바나나 열풍’이 '초코파이 바나나'처럼 타 제품군, 더 나아가 요식업계까지 휘몰아치고 있다. 왜 우리는 이토록 ‘바나나’에 열광하는가.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필요한 우리네 입맛과 일상

‘한국인의 입맛’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매운맛’이다. 통각을 자극해 느낄 수 있는 매운맛을 사랑하는 우리의 입맛을 꿋꿋하게 유지해주는 한 가지 버팀목이 있다면 바로 ‘단맛’이다. 

강렬한 통각으로 혀를 짜릿하게 긴장시킨 뒤에 느끼는 달콤한 맛은 더욱 감미롭게 느껴진다.

▲바나나 속은 본래 씨가 대부분이었지만, 끊임없는 개량으로 지금의 모습이 됐다. ⓒ픽사베이

이러한 요구에 가장 알맞게 부각하는 식재료로 ‘바나나’를 꺼내들은 것. 평소 매운 맛을 즐기는 한국인들에게 부드러움이 가미된 달달함은 바쁜 일상 속에 잠깐의 휴식을 갖는 것처럼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선사한다.

참 바쁜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 달콤한 한입

‘슈가보이’ 백종원의 집밥 열풍이 아직까지도 뜨거운 이유도 ‘단맛’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다. 시청자들은 거의 모든 곳에 설탕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백종원에게 ‘슈가보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전까지 ‘건강에 해롭다’, ‘이가 썩는다’라는 이야기로 멸시 아닌 멸시를 받았던 설탕은 사실 우리가 즐겼던 거의 모든 음식에서 묵묵히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백종원의 레시피가 알렸다고 할 수 있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프랜차이즈 카페 커피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픽사베이

‘단맛’이 가진 단점이 어떻건 간에, 한국인의 일상이 바빠질수록 우리는 단맛에 더욱 열광한다.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과자를 먹으면서 우리는 ‘당 충전’을 한다. 잠깐이나마 단맛이 선사하는 황홀한 휴식에 우리의 숨 막히게 바쁜 삶을 잊기 위해서, 그리고 또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부드러운 단맛의 편안함, 바나나의 매력

바나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과 더불어 영양학적으로도 매력이 풍부한 식재료다. 근육통을 예방해주고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칼륨이 풍부하며, 나트륨이 낮아 심장관련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위궤양이 있는 사람도 먹을 수 있으며, 빈혈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차가운 성질이라 열을 내려주는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익힌 바나나와 초콜릿의 궁합을 알고 있었던 서양의 '초코바나나' ⓒbakedbree.com

‘바나나 열풍’이 아직까지도 뜨거운 이유는 바나나가 이러한 ‘중화’ 역할을 하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갖가지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매운 음식 뿐 아니라 초콜릿과 같은 달콤한 식재료나 딸기나 키위 같은 과일과도 바나나 특유의 은은하지만 향긋한 향이 잘 어울린다.

‘바나나 열풍’이 일어나기 전에도 딸기와 바나나를 설탕과 얼음을 넣어 함께 갈아낸 ‘딸바 쉐이크’와 같은 음식들이 존재한 것을 보면 이를 반증한다. 이처럼 바나나는 이전부터 잠재력이 충분한 식재료였다. 

부산이 키운 닭발 브랜드 ‘발빠닭’에서 선보이는 바나나 닭발

▲바나나와 함께 플레이팅된 '발빠닭'의 닭발. ⓒ최상인 기자

일반적으로 ‘술안주’라는 인식이 강하던 음식 ‘닭발’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 중 하나였다. 쉽사리 손을 뻗어 집기 힘들게 하는 독특한 생김새가 주 원인이다. 강렬한 매운맛과 비주얼을 완화시키기 위해 ‘발빠닭’에서는 바나나를 집어 들었다.

부드럽고 향긋하며 편안한 맛의 바나나와 함께 플레이팅된 새빨간 닭발은 밥과 함께 내놓는 것 이상으로 그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바나나는 맵기 그지없는 음식도 보다 손쉽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심리적 중화감을 느끼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발빠닭’을 찾는 손님들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것이다. 보통 남자들이 선호하는 식품이었던 닭발이지만, 바나나를 더함으로서 여심을 사로잡는 통로를 개척한 것이다.

새로운 입맛으로 사람들을사로잡는다

사람들이 어떤 맛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식품업계와 요식업계 공통의 뜨거운 화제거리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맛의 뒤편에는 그들의 심리가 반드시 작용한다.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긴장했을 때, 화가 많이 날 때 흔히 사람들은 그 감정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흔히 특정 음식을 찾곤 한다. ‘오늘 점심에는 왠지 떡볶이를 먹고 싶어’ 라던가, ‘저녁에 치킨이나 먹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 뒤편에는 씹고 뜯고 맛보는 과정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리는 식욕에 큰 영향을 끼친다. ⓒ픽사베이

간단한 예로, 신경질이 많이 나고 계속 화가 나있는 상태일 때엔 감자칩과 같이 바삭거리며 씹을 수 있는 간식을, 그리고 외롭고 우울해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왠지 포근한 빵을 찾게 된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기분에 따라 같은 음식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살아온 다른 환경과 문화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화권별로 흔히 ‘소울 푸드’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와 파전이 끌리는 것처럼, 미국 흑인들은 저렴하고 값싸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수박에 애정을 갖고 있고, 영국인들은 느끼하기 그지없지만 피시앤칩스를 저녁으로 한끼 먹으면 행복해한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입맛을 선사해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싶다면, 보편적으로 그 사회에 퍼져있는 감정과 문화를 연구하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특유의 뜨거운 기질과 바쁜 일상을 타파하고 부드러움을 선사하는 ‘바나나 열풍’이 불지만, 중국에는 느끼한 음식을 먹은 뒤 뜨거운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끈적할 만큼 달콤한 ‘망고’가 인기다. 

중국의 입맛을 사로잡고자 오리온에서 선보인 ‘망고맛 오감자’와 ‘망고맛 스윙칩’은 중국 법인의 5월 매출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나 상승시켰다.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망고 스윙칩'과 '망고 오감자' ⓒ식품음료신문

지금 이 시간에도 ‘맛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생명 유지를 위해 먹어왔던, ‘살기위해 먹는’시대는 이제 끝났다. 식품업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인지하고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다. 

한끼 밥을 먹는 시간은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펼치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휴식의 시간인 것이다.

무엇이든지 입에 넣기 전에, 우리가 왜 이것을 먹고 싶어 하며 먹으려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이 먹거리에는 나의 어떤 심리가 반영돼 있으며, 어떤 문화적 배경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것을 먹음으로서 어떤 감정을 해소하고 싶어 하고, 어떤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것일까.

김다정 기자  dajaung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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